뱀닭이란?

뱀닭기르는방법

4개월된 토종닭이나. 오골계에 인삼 2근과 마른 옻껍질 3근을 각각 갈아서 보리밥에 섞어 3개월 정도 닭에게 먹이다가 입추가 지나면 독사 30마리와 능사, 화사, 구렁이를 썪힌 다음 여기서 나온 구더기를 1개월정도 닭에게 먹이면 뱀닭이 됩니다.
이렇게 뱀닭을 사육하다 보면 간혹 털이 빠지기도 하는데 별관계는 없습니다. "뱀닭" 또는 "뱀구더기닭"이라고도 불립니다.

뱀닭의 원리

닭에게 인삼가루, 옻나무, 껍질 가루를 먹여서 기능을 최대로 강화시켜 강한 흡인력으로 호흡을 통해 공기중에 떠다니는 공간 색소중의 약분자들을 끌어 들이는 것입니다.
생약속에든 모든 독성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한반도 상공(上空)에만 충만해 있는 공간 색소계의 산삼분자, 부자분자, 음양곽분자등의 강한 활인핵(活人核)도 합성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뱀닭의 복용방법

닭의 털과 똥만 버린다음 나머지를 모두 푹 삶아 그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습니다. 고기를 먼저 드시고(특히 폐와 간은 꼭 드십시오)
국물은(엑기스) 10~14봉지정도 나오는데 하루에 두 번 아침, 저녁 공복시에 드십시오, 보관은 냉장보관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와함께 그 뼈도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꿀에 개어환으로 만들어 드시면 아주 좋습니다.

뱀닭은 1마리~3마리 이상 꾸준히 먹어야 효과를 보실수 있습니다
(인산 김일훈선생님의 "신약" p143 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습니다)

*위의 내용은 지금은 작고하신 인산 김일훈 선생님의 "신약"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인산선생 발자취

1909.03~

인산선생은 1909년 음력 3월, 함경 남도 흥원군 용운면의 유의(儒醫)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부 모두 유학자이자 의학자였다.
네살 무렵 말과 글에 눈떴다는 그는 일곱 살 되던 해 개인 하늘의 오색무지개를 보고 '우주의 비오를 깨우쳐 자연물의 속성을 간파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할아버지를 도와 사람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한다.

1924~

인산선생은 16세 때인 1924년 가을, 의주읍에서 횡포를 일삼던 일본인의 아이를 때려 눕히고 압록강을 건너 만주로 가서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변창호 선생이 대장으로 있던 모화산 부대의 일원으로 항일 전투에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과 막노동, 병자구료로 나날을 보내다가 1934년 봄철 어느날, 임무 수행차 철원으로 가던 도중 얼굴을 알아본 조선인 형사에게 붙잡혔다.

발톱이 빠지는 모진 고문을 당하고 춘천형무소에서 복역하였는데, 1년 6개월되던 어느날 노역장에서 탈출하여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이때부터 인산선생은 백두산, 묘향산등지를 전전하면서 자연물의 약리 작용을 연구하는 한편, 가는 곳마다 인술을 펴 숱한 병자들을 구제하였다. 인산선생이 죽염을 최초로 만든 것도 이 무렵이었다.
인산선생은 광복 후 해방정국을 주도했던 김성수, 여운형, 장덕수, 김병로, 김준연 등과 교유 하면서 건국운동에 잠시 관여하였다. 그러나 좌우의 분열과 파벌간의 극심한 군력쟁탈전에 환멸을 느껴 정치권 인사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정부가 수립되자 인산선생은 이승만 정부에 획기적인 제안을 한다. 한의학과 양의학의 장점을 상호수용에 '양한방종합병원과 한의과 대학을 설립'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풀을 뜯어 먹이고 쇠꼬챙이로 사람을 찌르는 것도 의학이냐'는 보건행정 담당 미국 고문관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 일로 인산선생은 정계와 완전히 결별하고 계룡산으로 낙향한다. 계룡산, 전북 남원의 운봉마을, 경남 함양의 살구쟁이 마을 등지를 전전 하면서 글방 훈장, 산판 목물, 함지박 깎는 일 등으로 생계를 꾸리면서 오핵단 삼보주사와 같은 암치료약의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다

1960~

60년대에는 다시 서울로 이주하여 침과 쑥뜸 등으로 환자를 치료하였는데, 이때 소경을 눈뜨게 하고 꼽추의 등을 펴게 하는 등 인산선생의 신묘한 의술은 그때도 사람들 사이에 알려져 "장안에 묘향산 활불(活佛)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돌기도 하였다.
가난과 고통을 자초했던 인산선생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약성을 연구하고 오핵단, 삼보주사와 같은 전설의 신약을 제조하는 실험에 몰두하였다. 인산선생은 정계 인사들의 주선으로 편안하게 살 수도 있었으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함지박을 깎는 목공일로 연명을 하면서 시골의 촌로들 속에 묻혀 살았다.

독립운동 시절 함께 고문을 당하고 일제의 총에 맞아 죽은 동지들의 얼굴이 떠올라 편히 살수 없었다고 한다. 인산선생은 항상 남루한 차림을 하였고 심지어 한 겨울에도 방에 불을 때지 않고 자는 날이 많았다고 한다.
인산선생은 이미 1970년대 초반에 공해독으로 인한 난치병의 증가를 예견하고 그 치료대책을 세웠다. 당시에는 '공해'라는 낱말 자체가 없었으나 인산선생은 신문지상에 화공약독의 오염이 가져올 재앙을 경고하고 그 대책을 제시하는 글을 쓰기도 하였다.

1980~

1980년대에는 암을 비롯한 현대 난치병의 치료법을 담은 (宇宙 와 神藥)을, 1981년에는 역시 같은 내용의 救世神方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이 책들은 워낙 심오하고 난해하여 일반인에게는 거의 읽히지 않았다. 77세때인 1985년, 인산선생은 당신의 지혜를 일반인이 쉽게 알 수 있도록 세상에 널리 펴야 한다는 자식들의 요청에 따라 자신의 지혜와 경험의방을 구술하기 시작하였다.
인산선생의 구술을 자식들이 받아 적고 다듬으면 인산선생이 다시 감수하는 작업을 1년여 한 끝에 한 권의 책이 더 출간되었다. 바로 인산선생의 의학과 사상이 집대성된 것이 [神藥]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지금까지 30만권 이상 판매되었다.

신약이 발간되자 몇몇 잡지들이 책의 내용과 인산선생의 행적을 대서특필했고 난치병 환자들이 경남 함양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한 잡지는 그 당시 인산선생의 자택을 난치병환자들의 마지막 종착역이라고 표현하기도 하였다. 인산선생은 '마지막 가는길'에 자신의 경험과 의료지혜를 세상에 모두 공개하겠다고 결심. 1986년 6월부터 전국 순회 강연을 시작했다.

1990~

1991년 5월까지 30차례에 걸쳐 전국의 주요 도시 그리고 미국과 중국에서 인산선생의 신약의방이 세상 사람 들에게 알려졌다. 이 강연의 모두 녹음 되었고 훗날 그 전문이 [신약본초]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인산선생은 1992년 5월 19일 저녁 향연 84세의 일기로 타계하였다

Photo Gallery

지리산 뱀닭

뱀닭 구매 및 제품문의

지리산반야봉의청정자연속에서 순수한농민의마음으로성심,성의껏 뱀닭을키우고있습니다.